우리들의 봄은 언제나 길고 지루한 겨울 추위의 끝자락을 밟으며, 기나긴 기다림 끝에 더디게 더디게 온다. 노랑 노란 꽃들과 더불어 목련이 지기 전에 불쑥불쑥 쑥국과 냉이국, 달래장들이 식탁을 넘나들고 색색 꽃지짐들 또한 그 즐거움에 눈코귀가 어찌 입 덕만 못하랴마는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이 후덕한 봄의 호사를 누리지 못하는 멀리 있는 식구들 생각이 나서이다.
아, 봄, 봄봄봄 하는 사이에 벚꽃 이파리 흩날리는 꽃비를 뿌리며 이 봄은 어느새 훌쩍 지나가 버릴 것이다. 쌀쌀맞게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갈 것이다. 다만 쌀쌀한 밤공기는 데리고 갈 것이니 일교차에 고뿔 들 일은 없을 것이다. 일복이 많거나 자유시간 부족으로, 혹은 어찌어찌하다가 잠시 한눈파는 사이에 봄을 놓쳐버렸다면 그 봄을 기다림은 다시 시작될 것이다. 초록 잎새들과 색색의 봄꽃들로 눈과 마음이 복 받은 것이라면 갖가지 봄나물들은 입맛과 오장육부(五臟六腑)와 신체발부(身體髮膚)가 복을 받는 것이리라. 필자가 주로 식탁에서 만날 수 있는 나물과 채소들, 또는 차로 우려서 마실 수 있는 재료들에 더 관심을 두는 것은 누구나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이며, 가장 자연적이고 한의학 정신에 더욱 가까이 있는 것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회차가 거듭되면 식탁을 벗어나는 약재에 대해 언급할 수도 있겠지만 되도록 주변에 흔한 재료들을 먼저 찾을 것이다.
전주의 남동쪽이라고 할 수 있는 아중역터 바로 뒤편, 마치 숨겨놓은 듯 자리하고 있는 조그마한 동네 행치마을에는 지인들과 가끔 들르는 곳이 있다. 설립자의 고급스러운 안목을 느낄 수 있는 갖가지 나무들이 딱 있어야 할 그 자리에 서 있고, 금강산을 재현한 듯 한 기암괴석에 한줄기 폭포수가 흘러내리는 풍경까지 멋들어지게 잘 조성된 아름다운 정원 카페 ‘달빛 든 솔’이 있다. 특히 눈길이 가는 나무가 있는데 수령이 100년도 넘었다는 잘 가꿔진 매화나무가 한 그루는 입구에서 길손을 공손히 맞이하고, 다른 한그루는 정원 마당에서 한껏 맵시를 뽐내고 있는 듯하다.
지난여름 살구향인 듯 자두맛인 듯 잘 익은 황매실 맛도 보았으며, 이 봄에는 매화나무에 봄이 오고 있는 것을 짬짬이 지켜보기도 했다. 매화는 매(梅), 난(蘭), 국(菊), 죽(竹)을 일컫는 사군자(四君子)의 하나로서 고결함과 높은 절개를 대변하는 식물이다. 눈 속에서 피는 설중매(雪中梅), 추위 속에서 피는 한중매(寒中梅) 등 수많은 문인묵객의 사랑을 받아온 꽃이다.
꽃을 강조하면 매화나무가 되고 열매를 강조하면 매실나무가 되는 매화는 반쯤 개화한 꽃을 따 그늘에서 말려 두었다가 차로 우려 마시면 그 맛과 향이 참으로 일품이다. 딱 한 송이만 찻잔에 우려도 어디에서 온 것인지 그윽한 그 향기는 모나리자의 미소인 듯 염화시중의 미소인 듯 저절로 미소를 짓게 한다. ‘향약집성방(鄕藥集成方)’에 의하면 매화차는 목이 마르고 소변을 많이 보는 것을 치료한다고 하였으니 당뇨에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 좋겠다. 매화차는 갈증을 해소하고 숙취를 없애며 기침과 구토 증세를 다스린다. 특히 지나친 스트레스로 인해 소화가 잘 안 되며 가슴이 답답하고, 목 안에 이물질이 걸려 있는 것같은 매핵기 증상에도 효과가 있다. 머리가 맑아지고 피부를 깨끗하게 하며 기미나 주근깨의 예방에도 좋다.
매실(梅實)은 강한 신맛이 특징인데 성분의 85%는 수분이며 10%의 당분과 5%의 유기산을 함유한다. 구연산을 포함한 각종 유기산과 비타민 등이 풍부하게 함유된 매실은 피로회복을 돕고, 해독 작용과 살균작용, 구충작용, 정장작용이 뛰어나 오래된 기침이나 인후통, 설사와 변비를 치료하는 데 효과가 있다. 유기산 중에서도 시트르산(구연산)의 함량이 다른 과일에 비해 월등히 많다. 시트르산은 섭취한 음식을 에너지로 바꾸는 대사 작용을 돕고 근육에 쌓인 젖산을 분해해 피로를 풀어주며, 칼슘의 흡수를 촉진하는 역할도 한다.
한편 매실에 함유된 피루브산은 간(肝)의 해독 작용을 도와주며, 카테킨산은 장(腸) 속 유해균의 번식을 억제하므로 매실차를 만들어 장복하면 좋다. 매실차를 담글 때 차조기잎을 함께 사용하면 훨씬 좋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항균, 항종양, 항과민, 항노화, 항피로, 항산화, 간보호 작용에 대한 실험적 연구가 다수 보고되었으며, 바이러스성 간염이나 궤양성 결장염 및 과민성 질병 등의 병증에 사용한다.
매화찬(梅花讚)을 하면서 이 글을 정리하는 동안 녹차와 국화차를 섞어서 두세 잔 마시니 며칠 전부터 까닭 없이 붓고 무겁던 눈꺼풀이 부기가 빠지고 점점 가벼워지는 것을 실시간으로 느낀다.
댓글 (0)
- 띄어 쓰기를 포함하여 250자 이내로 써주세요.
- 건전한 토론문화를 위해,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비방/허위/명예훼손/도배 등의 댓글은 표시가 제한됩니다.
[반도체 왕좌의 게임④] 바이든이 삼성전자를 찾는 이유
“해운·철강·조선, 완연한 봄기운”…커지는 V자 부활 기대감
[뒤끝토크] 아파트 택배차량 진입금지에 막말까지⋯상처받는 택배기사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