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통신] 삼성이 라임자산운용처럼 되길 원하나?

증권 / 김지호 기자 / 2020-05-07 02:16:18

[아시아타임즈=김지호 기자] “저는 제 아이들에게 회사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을 생각입니다.”


6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입에서 나온 발언은 세간을 놀라게 하기 충분했다. 자신의 발언대로 경영권 승계를 위해 많은 논란을 일으킨 장본인이 이 부회장이어서다. 그런 그가 경영권을 아이들에게 물려주지 않겠다니.

이 부회장의 횡령·뇌물 혐의 파기환송심 재판부가 출범시킨 삼성준법감시위원회가 요구한 대국민 사과라고는 하지만 그 수위가 매우 높았다. 이 부회장이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겠다는 정확한 의미는 파악하기 어려우나 이후에는 창업주 자손이 아닌 전문경영인이 삼성을 이끌어가게 된다는 점은 명확히 전달됐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6일 서초동 사옥에서 대국민 사과 회견을 위해 입장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앞서 지난해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겠다고 공언한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은 자녀들을 이사회에는 참여시키겠다고 조건을 달았다.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 역시 자녀들에게 경영권을 넘겨주지 않겠다고 여러 번 강조했다.

이처럼 대기업 회장들의 자녀들에 대한 경영권 승계 포기는 반기업정서와 높은 상속세로 인해 합법적 대물림이 사실상 어렵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우리나라는 상속세 명목 최고세율은 50%에 달하고 최대주주 보유 주식에 대해 10~30%를 할증해 최대 65%의 세율을 부과하고 있다. 상속세를 내려고 지분을 팔면 양도소득세까지 부과돼 실제 체감하는 세율은 80%에 달한다는 것이다.

대한상공회의소와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재계는 지난해 한국의 상속세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 최고 수준이라면서 세율 인하를 줄기차게 요구하고 있다. 실제로 명목세율만 보면 OECD 국가 중 일본(55%)에 이어 한국(50%)이 두 번째로 높다. 그러나 진보세력이 득세한 정치권에서 기업의 상속세율 인하 요구를 받아줄리 만무하다.

그럼에도 이 같은 높은 상속세율에 따라 국내 주요 기업 경영권을 모두 전문경영인 차지하는 일이 올바른 것인가에 대한 의문은 여전하다. 전문경영인과 ‘오너 일가’ 어느 쪽이 경영하는 게 보다 기업에 유리한지에 대한 명확한 해답은 전세계적으로 없으며 오히려 오너일가가 경영하는 기업의 성적이 장기적으로 좋았다는 연구결과도 많이 나와 있기 때문이다.

물론, 기업의 역사가 오래되고 커지면 오너일가 만으로 경영진을 꾸리기에는 한계가 있지만 이런 점에서 지배구조에는 정답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소유와 경영을 모범적으로 분리했던 회사가 있다. 바로 라임자산운용이다. 이 회사는 창업자인 원종준 대표가 종업원지주제를 실시하고 지분을 골고루 나눠 갖게 했다. 국내에서 보기드문 선진적 지배구조라며 칭송이 잇따랐다. ‘펀드 돌려막기’ 등 의혹이 제기되기 전인 지난해 6월 기준 원 대표의 지분율은 배우자 보유분을 포함해도 32.5% 수준이었다.

▲원종준 라임자산운용 대표가 지난해 10월 서울 여의도 국제금융센터(IFC)에서 라임자산운용 펀드 환매 연기 관련 기자 간담회를 하기에 앞서 고개숙여 사과하고 있다. 뒤는 이종필 당시 부사장/사진=연합뉴스

지분율이 적다보니 원 대표의 회사에 대한 영향력은 급속히 약화됐다. 지분 3.5%를 보유했던 이종필 부사장을 통제하는데도 한계가 보였다. 원 대표는 사석에서 이 부사장에 대해 ‘통제불능’이라고 자주 토로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라임자산운용은 선진 지배구조를 도입해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려 애썼지만 금융계의 ‘괴물’이 돼 ‘단군 이래 최대 금융사기’를 저질렀다는 오명을 쓰고 쓸쓸히 사라질 위기다.

이처럼 기업이 영속하며 사회에 공헌하기 위한 조건은 누가 경영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경영하느냐에 달려있다는 점을 라임자산운용은 확실히 보여줬다. 오너일가라서 경영에 무조건 참여해서도 안 되지만 배제당해서도 안 되는 것이다. 이 부회장이 법원의 선처를 구하며 경영권에서 배제하겠다는 자녀들이 어떤 전문경영인보다 뛰어나고 도덕적인 경영자로 성장한다면 어찌할 것인가.

한때 샐러리맨의 신화로 불렸던 강덕수 전 STX그룹 회장은 그룹이 망해나갈 때 다른 대기업으로부터 어떠한 지원도 받지 못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까지 지냈지만 어렸을 때부터 쌓인 오너 간 네트워크에서 철저히 소외돼서다.
 

신진영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원장은 이 부회장의 경영권 불승계 결정에 대해 “이제 재벌로 불리는 오너들이 기업이 커지면서 경영권을 다음세대에 온전히 물려주기 어려운 시대가 된 것”이라며 “우리나라 상속세율이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세대가 지나면서 오너일가의 지분이 희석되는 현상은 자연스럽고 이에 대비해야한다”고 말했다.

신 원장은 “이분법적으로 오너나 전문경영인, 어느 쪽이 경영권을 갖느냐는 중요하지 않고 얼마나 견제와 균형을 통해 준법경영을 하느냐가 핵심”이라며 “전문경영인이 경영을 한다고 해도 준법경영을 못한다면 기업은 망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 아시아타임즈.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김지호 / 경제부 기자
이메일 다른기사보기
뉴스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