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통신] 사촌형 정몽구 앞에서 더욱 작아진 정몽규 HDC회장

증권 / 김지호 기자 / 2020-06-12 00:09:35

[아시아타임즈=김지호 기자] HDC현대산업개발(현산)의 아시아나항공 인수가 더욱 꼬이고 있다. 물론,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라는 예상치 못한 변수가 발생했지만 현산의 모호한 태도가 인수 의지에 대한 의구심을 낳고 있다.

KDB산업은행을 비롯한 채권단도 10일 “현산 측이 서면을 통해서만 논의를 진행하자는 의견에는 자칫 진정성 자체에 대한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며 “향후 공문발송이나 보도자료 배포가 아닌 협상 테이블로 직접 나와 적극적으로 협상에 임해 달라”고 당부했다.


현산 측이 인수 의사에 변함이 없다고 밝히고 있지만 채권단의 인수조건 재검토 요구 등으로 사실상 포기 수순에 나선 것 아니냐는 의심은 계속 제기되고 있다. 계약금 2500억원을 회수하기 위해 각종 핑계를 대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현산은 입장문에서 계약 체결 당시와 비교해 아시아나항공의 부채가 작년 말 기준 2조8000억원 추가로 인식되고, 1조7000억원의 추가 차입으로 부채가 4조5000억원 증가했다고 지적했다.
 

▲정몽규 HDC그룹 회장이 지난해 11월 아시아나항공 인수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기자회견에서 질문을 받고 있다./사진=연합뉴스

현산은 추가 차입과 차입금의 영구전환사채 전환 등이 사전 동의없이 승인됐다고도 했다.부채비율은 2020년 1분기말 현재 계약 기준인 2019년 반기 말 대비 1만6126% 급증했다고도 했다. 계약이후 순손실 규모도 8000억원이 확대됐다는 것이다.

코로나19라는 ‘블랙 스완’으로 인해 인수할 회사의 상황이 급격히 악화됐다는 점에서 현산의 입장을 이해 못할 것도 아니다.

하지만 지속적인 의지표명에도 인수 포기설이 지속적으로 돌고 있는 것은 그간의 의심에도 아무런 입장을 내놓지 않았던 현산의 책임이 크다.이런 점에서 정몽규 HDC그룹 회장의 사촌형인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의 지난 2014년 삼성동 한국전력 본사부지에 대한 ‘10조원 베팅’이 더욱 대조된다.

당시 현대차와 기아차, 현대모비스 등 현대차 3인방은 삼성동 한전부지를 무려 10조5500억원에 사들였다. 당시 공시지가 3조3000억원에 3배가 넘는 금액이었다.

▲정몽규 회장의 사촌형인 정몽구 현대차그룹회장

특히 이 같은 금액을 실무진이 아닌 정몽구 회장이 직접 정한 것으로 알면서 ‘황제 경영’ 논란이 일었다. 3종목의 주가는 하락했다. 정몽구 회장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고 이는 한국 기업의 지배구조 문제로 비화됐다. 정몽구 회장은 향후 무혐의를 받긴 했지만 일부 주주들로부터 배임 혐의로 피소당하기도 했다.

그 때 정몽구 회장이 가격을 높게 쓴 이유가 알려지자 이 같은 논란은 수그러들었다. 한전 부지 매입액이 국가기관인 한국전력의 부채를 갚는데 쓰이는 만큼 국가에 기여하는 일이라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삼성동 한전부지의 공시지가는 그 사이 5조원이 넘었지만 여전히 10조5500억원에는 못 미치고 있다. 그간 신사옥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 착공허가를 받지 못해 엄청난 기회비용도 치렀다.

국가에 기여한다는 정몽구 회장의 10조5500억원 베팅 이유는 선친인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을 연상시킨다. 정주영 전 명예회장은 지난 1977년 주한 미국 대사인 리처드 스나이더가 독자개발을 포기하고 미국 자동차의 조립공장이 되라는 제안을 과감히 거절했다.

정주영 전 명예회장은 스나이더 대사에 “그동안 건설에서 번 돈을 다 쏟아 붓고 실패하더라도 결코 후회가 없다”며 이것이 밑거름이 돼서 후대에 가서라도 자동차 산업이 자리를 잡는다면 그것을 보람으로 삼겠다“고 일축했다.

사실 이번 정몽규 회장의 아시아나항공 인수 시도는 아버지인 정세영 전 현대차 회장의 한풀이성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정주영 전 명예회장의 셋째 동생인 정세영 전 회장은 현대차의 설립자다. ‘포니 정’이라는 별칭이 말해줄 정도로 일평생을 자동차에 바친 인물이었다.

▲현대차를 떠나며 눈물을 흘리는 정세영 전 현대차 회장/사진=온라인커뮤니티

하지만 조카인 정몽구 회장에 밀리면서 결국 눈물을 흘리면서 현대차를 떠나야했다. 아버지로부터 현대차 회장직을 물려받아 경영수업을 받던 정몽규 회장도 1999년 회사를 쫓겨나듯 나왔다. 대신 이들 부자는 현대차에 비해 규모가 작은 현산에 만족해야했다.

정몽규 회장은 사촌형인 정몽구 회장과 자신을 비교하면서 일종의 자격지심을 느꼈을 가능성이 높다. 정몽구 회장이 자신보다 24살이나 많을 뿐 아니라 기업규모에서도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특히 자신의 자리를 빼앗겼다는 허탈감도 정몽규 회장을 괴롭혔을 것으로 보인다.

정몽규 회장의 지난해 11월 아시아나항공 인수 우선협상자 선정 기자간담회에서의 “모빌리티 기업으로 도약하게 됐다”는 발언도 정몽구 회장에 대한 일종의 도전장으로 읽혔다. 정몽구 회장이 보란 듯이 애경그룹보다 1조원이 많은 2조5000억원의 가격도 제시했다. 인수만 순조롭게 마무리된다면 그간의 설움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는 기회였다.

하지만 하늘은 코로나19로 정몽규 회장을 다시 시험했다. 아쉽게도 정몽규 회장은 채권단에 인수 조건 재검토를 요구하면서 하늘의 시험을 이기지 못하는 형국이다. 덫에 걸리고 만 것이다.

정부와 항공업계 등은 정몽규 회장의 요구에 불확실성이 극도로 커지면서 혼란이 벌어지고 있다. 아시아나항공은 현산 측에 추가 차입과 차입금의 영구전환사채 전환 등 모든 정보를 제공했다고 반발하고 있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11일 기자간담회에서 채권단과 현산을 향해 “불확실성을 빨리 끝냈으면 좋겠다”며 “양 당사자가 만나서 일단 대화를 했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하지만 가격을  크게 낮추려는 정몽규 회장의 의도에 따라 현산이 대화에 적극적으로 나설 가능성은 여전히 낮다. 마지못해 가격을 깎아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거나 계속 트집을 잡아 계약 파기를 노릴 의도가 커 보인다.

이럴 때 “건설에서 번 돈을 다 쏟아 붓고 실패하더라도 결코 후회가 없다”며 자동차 독자개발을 감행했던 정주영 전 명예회장은 무슨 말을 했을까. “국가에 기여하겠다”는 정몽구 회장은 어떤 행보를 보였을까. 큰아버지와 사촌형 부자 앞에서 정몽규 회장이 요즘 더더욱 작아보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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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호 /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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